수전 네이슨은 1969년 9월 22일 캘리포니아주 포스터시티에서 실종됐을 때 여덟 살이었다. 그녀는 어머니의 허락을 받고 가장 친한 친구 에일린 프랭클린에게 운동화 한 켤레를 돌려주러 집을 나섰다. 그녀는 끝내 도착하지 않았다.
12월에 당국은 크리스털 스프링스 저수지 인근 계곡의 35피트 깊이에서 낡은 매트리스 밑에 깔린 그녀의 시신을 발견했다. 그녀는 머리를 두 차례 맞았으며, 아마 돌로 맞은 것으로 보였다. 경찰서장 고든 펜폴드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해결하기 어려운 사건이 될 겁니다」.

그는 옳았다. 사건은 스무 해 동안 미제로 남았다.
1989년 1월, 에일린 프랭클린은 로스앤젤레스의 집에서 두 살배기 아들을 안고 있었다. 그녀는 바닥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던 다섯 살 딸과 눈을 마주쳤다. 그러자 한 장면이 그녀의 뇌리를 꿰뚫었다. 수전이 살해되는 모습이었다.

처음에는 그 기억을 부정했다. 그 후 상담사와 남편, 형제자매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해 11월부터 경찰에 여섯 차례 전화를 걸었다. 마지막 통화에서, 한 번도 공개되지 않았던 사건 기록의 세부 사항들을 확인한 뒤 모든 것을 바꿀 이름을 말했다: 은퇴한 소방관인 그녀의 아버지 조지 프랭클린이 수전을 살해했다는 것이었다. 프랭클린은 1989년 11월 28일 체포됐다. 한 해 뒤 배심원단은 그에게 일급 살인죄 유죄 평결을 내렸다. 억압된 기억이 살인 유죄 판결로 이어진 것은 미국 사법 역사상 처음이었다. 그러나 그 평결은 유지되지 않았다. 1995년 연방 판사는 재판 과정의 오류를 이유로 이를 뒤집었다. 그리고 1996년에는 마지막 결정타가 날아왔다: 그녀의 자매 재니스가 두 사람이 그 기억을 되찾기 위해 최면을 사용했다고 선서하고 거짓말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당시 법률은 최면으로 유도된 기억에 근거한 증언을 무효로 했고, 검찰은 사건을 다시 재판에 넘기지 않기로 했으며, 조지 프랭클린은 1996년 석방됐다. 기억에서 비롯된 사건은 결국 자백으로 무너졌다.

